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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성경 히브리어 번역/창세기

창세기 16장

by Cleire 2022. 4. 11.

1.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아이를] *낳지 못했다; 그에게는 하갈(Hagar)이라는 이름의 *이집트 여종이 있었다.

2. 사래가 아브람에게 말했다. “이제 보십시오. 주께서 제가 [아이를] *낳지 못하게 하시니, 부디 내 여종과 동침하십시오; 아마 그녀를 통해 집안의 대를 이을 것입니다.” 아브람은 사래의 말을 *따랐다.

3. 아브람의 아내 사래가 여종 이집트인 하갈을 데려다가, 그녀의 남편인 아브람에게 아내로 맞이하게 한 때는,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서 살아온 지 10년이 지난 후이다.

4. 아브람이 하갈과 동침했고, 그녀는 임신했다; 하갈은 자기가 *임신한 것을 알고 자기 여주인을 깔보았다.

5. 사래가 아브람에게 말했다. “내가 받는 이 *고통은, *당신이 책임을 지셔야 합니다. 나의 종을 당신 품에 안겨 주었더니, 그 종이, 자기가 임신한 것을 알고, 나를 멸시합니다. *주께서 당신과 나 사이를 판단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6. 아브람이 사래에게 말했다. *보라, 당신의 종이니, 당신 마음대로 할 수 있지 않소? 당신이 좋을 대로 그에게 하기 바라오.” 이에 사래가 하갈을 *학대하니, 하갈이 사래를 피해 도망쳤다.

7. *주의 천사가 사막에 있는 샘 곁에서 하갈을 만났다. 그 샘은 술(Shur)로 가는 길에 있다.

8. 천사가 물었다. *사래의 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길이냐?” 하갈이 대답했다. ”나의 *여주인 사래에게서 도망쳐 나오는 길입니다.

9. 주의 천사가 그에게 말했다. *“너의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에게 복종하면서 살아라.”

10. 주의 천사가 그에게 또 일렀다. ”*내가 너에게 많은 자손을 주겠다. *자손이 셀 수 없을 만큼 불어나게 하겠다.”

11. 주의 천사가 그에게 또 일렀다. “보라, 너는 임신한 몸이다. 아들을 낳을 것이니; *그의 이름을 이스마엘(Ishmael)이라고 해라. *네가 고통 가운데서 부르짖는 소리를 주께서 들으셨기 때문이다.

12. 너의 아들은 *들나귀처럼 될 것이다. 그는 모든 사람과 싸울 것이고, 모든 사람 또한 그와 싸울 것이다. 그는 자기의 모든 친척을 떠나 살게 될 것이다.”

13. 그러자 하갈은 “내가 이곳에서 나를 *보시는 하나님을 뵙고도, 이렇게 살아서, 겪은 일을 말할 수 있다니!”하면서, 자기에게 말씀하신 주를 "보시는 하나님"이라고 이름 지어 불렀다.

14. 그래서 그 샘 이름도 *브엘라해로이(Beer-lahai-roi)라고 지어 불렀는데; 보라, 그 샘은 지금도 가데스와 베렛(Bered) 사이에 있다.

*15. 하갈과 아브람 사이에서 아들이 태어나니; 아브람은 하갈이 낳은 그 아들의 이름을 이스마엘이라고 지었다.

16. 하갈과 아브람 사이에 이스마엘이 태어날 때에, 아브람은 86세였다.

 

*1. 낳지 못했다: 하나님의 거듭된 약속(12:7, 13:15,16, 15:4)에도 불구하고 사래가 늙도록 아이를 갖지 못한 것은 신앙생활의 한 갈등 요인이었을 것이다. 또한 히브리인들에게 있어 아이를 갖지 못하는 것은 단순히 신체적 결함으로 여기기보다는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은 것으로 여겨졌으니(20:17,18) 갈등은 더 심했을 것이다. 이에 사래는 이러한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인간적인 방법을 모색했는데 이 역시 후사 문제에 대해 아브람이 범했던 것과 동일한 실수이다(15:3). 왜냐하면 하나님의 약속은 한치도 어김없이 반드시 다 이루어지며, 그때는 인간의 생각을 초월한 하나님의 정하심에 따르기 때문이다(전 3:1,2, 사 55:8,9).

    이집트 여종이 있었다: 아브람이 기근을 피해 이집트에 내려갔을 때 사래 사건으로 파라오에게서 선물 받은 노비들 중 한 명으로 추측된다.

 

*2. 낳지 못하게 하시니: 하나님께서 자신의 태를 닫으셨다는 뜻으로 이제부터 하려고 하는 일의 책임이 근본적으로 하나님께 있다고 전가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낳지 못하게 했다는 말씀은 하신 적이 없다. 물론 잉태를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29:31, 시 127:3, 사 66:9). 따라서 사래는 하나님만을 믿고 그 약속을 의지해야 했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지 않고 기다리지 못한 것이다. 이 실수는 장차 큰 비극의 전조가 되었다.

    여종과 동침하십시오: 족장이나 부호와 같은 상류 계층에서 부부간에 자식이 없을 경우, 아내가 자신의 여종을 남편에게 주어 후사를 보도록 하는 것이 고대 근동의 관습이었다. 그리고 이 경우, 태어난 아기는 여종이 아니라 아내에게 속하도록 돼있었다. 따라서 사래의 행동은 생활 습속을 따른 자연스러운 행위였다고 볼 수 있으나,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인내하는 신앙심을 결여한 점과 이로 인해 하나님의 창조 질서인 일부 일처제를 파괴했다는 잘못은 면할 수 없다.

    따랐다: 아브람도 이에 응한 것으로 보아 약속의 본질에는 관심이 없고 그 성취 방법에만 몰두했던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인간적인 방법과 잔꾀로 성취하려는 것은 인간의 교만이자 잘못이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이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셔야 한다.

    임신한 ~ 깔보았다: 당시에는 여자가 잉태하지 못하는 것을 대단한 치욕으로 생각했고, 다산을 신의 은총으로 간주했으니(29:32,35, 30:6,20) 이러한 일이 충분히 일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삼상 1:6). 결국 사래는 자신의 계책에 자신이 얽매이는 비참한 꼴을 당한 셈인데 이는 일부다처 주의에서 오는 폐단과 비극의 한 예라고 할 수 있다(삼하 16:21,22).

 

*5. 고통: חָמָס(하마스)는 '악의 있는', '모독', '끔찍한' 뜻으로 사래의 고통이 견디기 힘들 정도임을 알 수 있다.

    당신이 책임을 지셔야 합니다: 아브람 탓으로 돌리는 것으로 책임을 전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책임 회피는 아담과 하와로부터 비롯된 인간의 치부이다(3:12,13).

    주께서 당신과 나 사이를 판단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얼핏 보면 정당하게 심판하자는 결연한 의지 표명으로 보이지만 이는 자신의 잘못에 대해 참된 성찰도 하지 않은 채 감정에 치우쳐 모든 책임을 아브람에게 미루기 위해 하나님의 이름을 남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Calvin).

 

*6. 이전부터의 아브람의 행동과 이 아브람의 말을 통해 자신의 필요를 채워주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무시하고 필요 없는 존재로 여기며 자포자기한 아브람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하갈이 사래를 피해 도망쳤다: 빈곤의 악순환을 연상시키는 죄악의 사슬고리 현상이다. 사래의 인간적 계획 -> 아브람의 동조 -> 하갈의 교만 -> 사래와 아브람 간의 불화 -> 사래의 학대 -> 하갈의 도망 순으로 계속 증대되는 죄악은 우리들의 순간의 잘못으로 엄청난 비극을 불러일으킬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7. 주의 천사: 천사는 מֲלְאָךְ(말아흐)는 '전령', '대표'란 뜻으로 대개는 천사를 의미한다(19:1, 민 20:16, 왕상 13:18, 호 12:4, 슥 2:3). 그러나 여기서는 성육신 이전 이 땅에 현현하신 성자 하나님 곧 그리스도를 의미하는데, 이는 하갈이 그를 가리켜 '하나님'이라 부른 점, 죄인으로서 제1위 되시는 성부 하나님의 본체를 본 자는 살 수 없다는 점(출 19:21~24, 삿 13:22), 제3위 되시는 성령은 단일성을 지닌 불가변적 존재로 인신의 형태를 취하지 않는다는 점, 주의 (그)천사에 대한 언급이 예수님의 탄생 이후에는 없는 점 등 때문이다.

 

*8. 사래의 종 하갈아: 하갈이 사래의 학대를 피해 달아났음에도 여전히 그녀는 '사래의 여종'임을 상기시켜 주는 말이다. 종이 자유를 얻을 수 있는 길은 주인으로부터의 사면에 있는 것이지 결코 도망치는 것에 있지 않음을 의미한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길이냐: 축복받은 장막인 아브람의 가정을 떠나 죄악과 우상 숭배의 도시인 이집트로 가는 것을 옳지 않음을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인류 초기부터 타락한 아담에게(3:9), 가인에게(4:9) '어디'란 물음을 통해 타락한 인간 자신의 현 위치를 파악하고 회개하며 돌아오기를 간구하셨다.

    여주인: 하갈이 사래를 자신의 '여주인'으로 호칭한 점은 하나님의 말씀에 양심이 움직이고, 자신이 여전히 사래의 종이란 사실을 분명히 발견했음을 알 수 있다.

 

*9. 말씀을 통해 '돌아가는 것'이 모든 문제의 먼저이며, 본인의 의무를 다해야 함을 알 수 있다. 말씀의 주체를 통해 이후 있을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실 것이고 해결해 주실 것을 믿고 나아갈 수 있다.

 

*10. 내가 너에게 많은 자손을 주겠다: 하갈도 사래가 자신을 통해 실현시키길 원했던 하나님의 언약을 알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그러한 언약의 자손이 태어나기 전에 하갈 자신도 많은 후손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것은 절망 중의 큰 위로였을 것이다. 특히 고대에는 인력이 곧 노동력이자 국력이었기에 자손에 대한 이 약속은 일국의 조상이 된다는 것과 더불어 큰 축복이다.

      자손이 셀 수 없을 만큼 불어나게 하겠다: 아브람에게 약속하신 말 '내가 네 자손을, 땅의 먼지처럼, 셀 수 없이 많아지게 하겠다'(13:16)을 연상시킨다. 결국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은 이집트 국경 부근에 그의 자손들이 많이 흩어져 살게 되었다(25:18).

 

*11. 그의 이름을 이스마엘이라고 해라: 성경 상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이름이 지어진 첫 번째 경우이다(17:19, 왕상 13:2, 대상 22:9, 마 1:21, 눅 1:13). 히브리 사회에서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이름을 부여하는 행위는 피명명자에 대한 명령자의 종주권이나 특별한 은총을 나타내는 행위인데, 이스마엘의 경우 그가 이러한 은총을 받은 이유는 그가 하나님의 신실한 종 아브람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네가 고통 ~ 때문이다: 하나님이 하갈의 고통과 괴로움을 헤아리셨을 뿐만 아니라 그녀가 드린 기도를 들어주셨다는 의미를 지닌다(Chaldee). 하갈 또한 아브람의 가정에서 함께 생활하는 가운데 자연스레 여호와 신앙을 체득한 것으로 보인다(13절).

 

*12. 들나귀: 원어 פֶרֶא(페레)는 '야생 나귀'를 뜻한다(욥 39:5~8). 이스마엘과 그 후손이 들나귀처럼 될 것이다는 말은 이후에 나오는 '모든 사람과 싸울 것이고, 모든 사람 또한 그와 싸울 것이다. 그는 자기의 모든 친척을 떠나 살게 될 것이다'라는 뜻이다.

 

*13. 보시는 하나님: אֵל(엘) + רֱאִי(로이),רָאָה(라아) 영어로 'God who sees'라는 뜻이다. 항상 우리를 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14. 브엘라해로이: '나를 보시는 살아계신 분의 우물'이라는 뜻이다. //Roland는 이 우물을 베르셰바(Beersheba) 남쪽 약 50마일, 아인 카디스(Ain Kadis) 서쪽 12마일 떨어진 지금의 'Ain Moilaihhi'와 동일시한다.

 

*15. 본절을 통해 하갈이 하나님의 지시대로 여주인 사래에게로 돌아갔고, 또한 그녀가 아브람에게 광야 체험을 들려주었음을 시사한다. 이에 아브람은 하갈이 자신에게 낳아준 아들의 이름을 하나님께서 주신 이름대로 '이스마엘'이라 칭했다. 그러나 구속사적으로 그는 어디까지나 약속을 따라 난 자인 이삭(21:1~3)과는 달리 '육체를 따라 난 자'이다(갈 4:23). 이는 하나님의 약속의 유업에 참여하지 못함을 의미한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지 않는 자들 또한 '육체에 속한 자'일 뿐이다.

 

 

이스마엘: 하나님이 들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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